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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만의 복원, 교체, 전남대 용봉탑에 새 봉황 깃들다


40여년만의 복원, 교체

전남대 용봉탑에 새 봉황 깃들다


 
 전남대학교의 상징인 용봉탑 최상단에 자리한 ‘봉황’이 40여년 만에 복원, 교체됐다.

 

 전남대는 지난 5월 16일 오후 2시 정병석 총장과 교수, 학생,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학교의 상징물인 조형복원물 ‘봉황’을 용봉탑 맨 꼭대기에 앉혔다.

 

 복원된 봉(鳳. 수컷)은 원작품과 같은 가로 3.1m, 세로 2.2m, 높이 1.7m로, 광택 스테인레스 재질로 만들어졌으며, 무게는 약 100㎏이다. 작품 복원은 전남대 미술학과 출신 이형용 대표(아트와이. 경기도 광주 소재)가 맡았다.

 

 용봉탑은 1978년 5월 준공된 이래 42년이 흐르는 동안 단 한 차례도 보수된 적이 없으며, 봉황을 손질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봉황 조형물은 노후화돼 날개 부분이 떨어져 나가거나 부서지는 등 기형적인 형태로 변한데다, 스테인레스 재질도 변색돼 상징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에따라 정병석 총장과 박정용 교수(미술학과)를 중심으로 복원에 나서도록 했고, 지난 4월 용봉탑 원작자인 최기원 교수(당시 홍익대 미술학과)측의 동의를 얻어 복원작업을 펴왔다.

 

 용봉탑은 1976년 11월 제2대 학도호국단(지금의 총학생회)이 학생들의 설문조사와 모금에 나서면서 시작돼 1978년 6월 8일 높이 13.63m, 반경 4.45m 크기로 제막됐다. 화강석으로 된 하부 좌대 3개는 교시인 진리, 창조, 봉사를 의미하고, 중간부분의 청동으로 된 3개의 탱주가 꾸불거리며 올라가는 모양은 용이 용트림하며 승천하는 모습을 형상화하면서도 인간의 모습을 그 안에 담았다.

 

 특히, 맨 꼭대기의 봉황 형상은 용봉인들이 웅장한 뜻을 갖고 창공을 비상하는 느낌을 표현했다. 당시로서는 다른 상징탑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수법인 모빌의 형태를 사용해 바람이 불면 방향을 바꾸며 돌아가고, 햇빛을 받으면 강한 반사광을 내도록 설계됐다.

 

 복원작업을 맡은 이형용 대표는 “모교의 상징물인 만큼 성심을 다해 원작 복원에 힘썼다.”고 말했다.

 

 한편, 수명을 다한 원작 봉황은 전남대 박물관에 옮겨져 영구 보존된다.

 

 

전남대의 상징

‘용봉탑’에 얽힌 이야기


 
 전남대학교를 상징하는 용봉탑에는 오래되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이 얽혀있다.

 

 용이나 봉은 상상의 동물로, 하나같이 신성하고 귀하게 여겨진다. 더구나 전남대 광주캠퍼스 주소지가 북구 용봉동이기에 용과 봉이 전남대 상징으로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용과 봉으로 구성된 용봉탑까지 세워져 있기에 전남대의 상징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할 지경이다.

 

 전대신문, 전남대 교지, 전남대 50년 남기고 싶은 이야기 등을 보면, 용봉탑과 관련한 재미난 이야기들이 덧씌워지고 각색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법대·사회대 건물은 용의 머리부분에 해당하고, 공대건물은 용의 발톱부분에 해당한다.’며 ‘무등벌을 감싸 안은 용의 정기를 입어 머지않은 장래에 큰 인물이 용봉골에서 배출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는 말이 소개되고 있다.

 

 ‘용봉탑 꼭대기의 봉황이 동쪽을 보면 길조, 달밤에 봉황이 달을 바라보면 좋을 일이 생긴다.’는 말을 듣고, 오다가다 점을 쳐 봤다는 여학생의 멘트도 나온다. ‘매년 3월에 봉황이 어느 단과대학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취업률이 높아진다.’는 말에서는 취업에 대한 학생들의 고뇌와 바람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짓궂은 학생들이 야밤에 용봉탑에 올라가 봉황의 머리를 자기 단과대학을 향하도록 돌려놓았다.’는 이야기에는 웃음이 배어나온다.

 

 ‘80년 5월에 봉황이 눈물을 흘렸다.’거나, ‘우리 민족이 진정한 해방을 맞는 날에 봉황이 날아오를 것이다.’는 말들은 다소 작위적이지만 당시의 시대적 고민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전남대 관계자는 “진위여부나 생성배경에 관계없이 용봉탑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대학 구성원들의 용봉탑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코로나 상황이 끝내고 돌아올 학생들을 가장 반갑게 맞아주는 것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새 봉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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