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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링 위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무조건 일으켜 세워 다시 싸우게 하는 것만이 응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누워 있겠는가. 더 이상 싸울 힘도 의사도 없을지 모르는데 거기에 대고 우리가 일방적으로 일어나라 힘내라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인생이란 링 위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응원할 때는 세심한 마음씀이 필요하다. 한비야 씨의 에세이 <그건 사랑이었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인생이란 긴 길을 살아가는데 있어 항상 기쁘고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겠지요. 어쩌면 기쁠 때 나누는 요란한 응원보다 지치고 힘들 때 소중한 사람의 결에 가만히 있어주는 그런 응원이 진정으로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북구FM> ‘청춘예찬’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다. <북구FM>을 찾은 지난 16일 오후 3시,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띈 것은 ‘청춘예찬’ 팀원들의 분주한 움직임이었다. 이들은 북구FM (88.9Mhz)에서 방송(매주 월~수 오후 3시)되는 ‘청춘예찬’을 제작·진행하는 우리 대학 학생들이다. 청춘예찬 DJ 정성현 씨(신문방송학·12)가 오프닝 멘트를 읽다 멈추자 PD 조진영 씨(신문방송학·12)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아 끝부분에서 틀리면 어떡해. 똑바로 해! 아 스트뤠스~ 다시.” 이후에 DJ 정 씨는 쩝쩝 소리를 내며 PD의 귀를 아프게 해 복수한다. 자유분방함 속의 아웅다웅이 아름답다. ‘청춘예찬’은 2006년부터 제작되어 왔으며 청춘의 소소한 일상, 고민, 문화들을 공유하고 있다. “청춘들과 함께 공감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모든 것이 저희에게는 큰 즐거움이에요.”
그들의 모습은 <북구FM>의 실상을 보여준다. 학생들뿐 아니라 지역민들이 직접 제작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1W의 공중파 라디오. 이를 ‘공동체 라디오(소출력라디오)’라 부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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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북구FM>은 지난 2004년 당시 정보통신부가 ‘소출력 라디오’라는 명칭으로 지역사회와 관련한 정보공유 및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사업공모를 했을 때 탄생했다. 당시 <북구FM>뿐 아니라 <마포FM> 등 총 8개의 시범사업자가 선정됐고, 이후 <나주FM>이 탈락해 현재 7개의 공동체 라디오가 지역주민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명칭은 2004년엔 ‘무등FM’, 2007년엔 ‘CBN 광주시민방송’으로 쓰다 올해 ‘북구FM’으로 변경했다. |
<북구FM>의 방송은, 광주 북구 지역의 경우 FM 88.9Mhz에서 들을 수 있으며 그 외 지역의 경우 인터넷 홈페이지 (www.icbn.or.kr)나 스마트폰 어플 ‘R2플레이어’를 통해 들을 수 있다. | |
<북구FM>은 2005년 광주 북구청과 전남대학교, 시민사회단체(북구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북구장애인복지회, 북구종합자원봉사센터)가 함께 만들었으며 2005년 7월 첫 전파를 쐈다. 이어 같은 해 12월 정식 개국방송을 시작한 이후 현재 하루 16시간 방송체제까지 넘어왔다. <북구FM>의 프로그램은 전남대 학생들의 참여가 주를 이룬다. 그들은 지금껏 ‘디딤소리’, ‘대학가토론’, ‘당신의 무대 라이브스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송출 했고 ‘청춘예찬’과 ‘힐링라디오’를 방송 중에 있다. 제작은 적은 인력에 더불어 전문가가 아닌 자원봉사 형태로 이뤄지기에 미흡한 부분도 많다. 또한 2009년 이후 정부의 지원금도 끊겼고 송신출력은 1와트 정도로 광주 북구 전역에도 그 영향이 미치지 못한다. 그 대안으로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이처럼 제작 여건이 좋진 않지만 공동체 라디오만이 할 수 있는 지역밀착형 취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충실히 담아내고 있는 그들이다. 학생들은 북구 지역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라디오 단막극을 만들고 소외계층 관련기관 소개, 장애인을 위한 구연동화이야기, 복지뉴스, 지역 이슈 분석 등을 해왔다. 이들은 왜 공동체 라디오에 빠져있을까? <북구FM>의 총괄 PD 최인주 씨(신문방송학·07)를 만나 공동체 라디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
- 공동체 라디오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저는 2007년 4월에 ‘청춘예찬’의 새내기들의 일상을 들어보는 코너에 게스트로 참여했었어요. 처음 시작할 땐 나도 라디오를 할 수 있다는 신기함과 제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이 계셔서 흥미를 느꼈죠. 그래서 공동체 라디오에 뛰어들게 됐어요.” |
- 총괄PD를 맡기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을 것 같다. “제가 1년 정도 청춘예찬 DJ를 하고 군대를 다녀왔어요. 그 때까지는 라디오를 흥미로만 대했던 거 같아요. 전역 후 2010년에 ‘뮤직&뮤직’를 제작, PD겸 DJ로 활동하면서 공동체 라디오에 맞는 프로그램이 무엇인가를 고민했어요. 단순히 인디음악 소개하고 이런 건 기성라디오에서도 할 수 있으니 청취자들에게 큰 의미가 없다고 느꼈죠. 그래서 지난해 7월에 ‘디딤소리’라는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했습니다. 장애인들의 손발이 되어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돕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각장애인 두 분을 섭외했고 그들이 직접 DJ로 활동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주로 담았죠. 장애인들이 어떻게 대학생활을 하는지, 그들이 음악을 듣고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느끼는 감수성 등을 코너로 제작했었습니다. 청취자들의 호응과 참여도 꽤 좋았고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를 만들었다고 봐요. 늘 뿌듯함을 느꼈어요. 현재 ‘디딤소리’ 프로그램을 잠깐 쉬고 있는데 올해 말 안으로 개편에 들어갈 생각이에요.”
- 총괄PD는 어떠한 일을 하나. “프로그램의 기획단계 지도, 홍보 업무, 편성 작업 등을 주로 해요. 프로그램 포맷이 매너리즘에 빠질 때나 새 프로그램을 만들 때 도움을 주죠. 공동체 라디오의 특성에 맞는 코너와 제작이 이뤄져야 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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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와 공동체 라디오의 매력이 비슷하다? |
- 지금껏 공동체 라디오에 참여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디딤소리’ 방송 당시에 큰 울림을 받았던 적이 있어요. ‘디딤소리’에 뮤직 다이어리라는 코너가 있었는데요. DJ분이 자기 이야기만 하다 보니 게스트를 섭외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게스트 역시 시각장애인이셨는데 동요를 작곡하고 동요 관련 리뷰를 쓰는 일을 하는 분이었어요. 두 분이 진행하면서 동요의 유치한 가사 속에도 삶의 진리라는 게 담겨 있다는 발언을 했었죠. 그 말을 듣고 동요와 공동체라디오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동요는 유소년들에게 한정된 음악이잖아요. 공동체라디오 역시 소소한 일상을 담는다는 점에서 특수성을 가지고요. 그렇지만 듣는 사람이 무언가 깨닫는다는 점 그리고 시각장애인분들이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을 캐치해 줬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이나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홍보가 부족하다는 점과 제작자와 수용자들의 인식이 약간 틀에 박혀있다는 점이 개선돼야 할 것 같아요. 1차적으로는 공동체라디오가 무엇인지 모르는 문제와 2차적으로는 참여에 대한 인식문제가 있죠. 공동체라디오의 기본 정신은 1인 제작이 가능하다는 점이에요. 내가 대본을 쓰고 소소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누구나 참여 가능한 방송이죠. 대학생들은 그나마 참여에 개방적인데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은 출연을 꺼려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 이웃의 이야기에 둔감해져가는 현실이 조금은 안타까워요. 우리 주변에도 따뜻하고 감동적인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본인이 살아가는 지역에 대한 관심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
1인 방송 가능 체계 정립…북구FM 기자단 운영에 역점 |
- 올 하반기부터 총체적 개편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편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 “사실 공동체라디오의 프로그램을 만들다보면 피드백이 부족해요. 청취자들이 그리 많지 않기도 하고 해서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가 많죠. 또 팀제로 운영되기에 기성방송국의 포맷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많고요. 그래서 소출력 라디오만의 특색을 살리려 <북구FM> 기자단을 운영 중입니다. 라디오 제작에 관심 있는 일반인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1인 연출, 기획, 편집, 진행이 가능하게끔 하는 거죠. 기자단은 총 8명을 선출했고요. 주 1회 자신이 정한 주제의 방송을 제작하고 월 1회 전문 방송인을 초빙해 평가 및 교육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본인이 할인쿠폰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 그 정보를 취재해 담을 수도 있는 거죠.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자는 공동체라디오의 취지를 살리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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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 라디오만의 특성이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한 마디로 내 이야기를 논하고 남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라 봐요. 일종의 교환일기 같은 매력이 있죠. 어떤 이슈에 대해 내 맘대로 떠들 수 있다는 거에요. 내 주변과 지역의 이야기를 즉각적으로 전달하고 문화를 형성, 공유한다는 것도 특성이죠. 광주 모 지역에서 화재가 났을 때 즉각적으로 소식을 전해 알린 적도 있고요. 또 비전문가가 진입하기 쉬운 매체라는 점도 큰 매력이에요.” |
출력범위 증대 필요…공동체 라디오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 |
- 공동체 라디오의 어려움으로 허가출력 제한, 콘텐츠의 낮은 질, 저예산 등이 꼽힌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무엇이라 보나?
“공동체 라디오 방송은 도입된지 8년째인데도 정부 지원 측면에선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에요. 허가 출력이 1W로 제한되다 보니 광주 북구 전 지역에 송출하기 힘들고 특정 주제를 다루지 못한 규정도 있었죠. 사실 기존 방송법이 공동체 라디오의 도입 취지와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측면도 있어요.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지난달 31일 발의된 <공동체 라디오 방송 진흥법안: 출력범위 100W 및 보도허용>이 잘 통과됐으면 좋겠고요. 또 소출력이지만 제작자들이 프로의식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어요. 내가 만드는 프로그램에 책임의식과 전문성을 늘 견지해야 해요. 프로그램의 질이 높아지면 청취자들도 늘어납니다.”
- 마지막으로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누군가와 공감하고 소통한다는 건 오늘날 요구되는 능력일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기본적인 본질이기도 합니다. 내 이야기를 맘껏 풀어놓고, 소통하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그런 곳 중 하나가 바로 <북구FM>이라고 생각해요. 기존의 방송에서 거대한 자본과 매뉴얼을 토대로 이야기를 생산해낸다면, 소출력 라디오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소통창구입니다. 소출력 라디오가 미디어로서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무엇보다도 일반인분들의 관심과 참여에요. 다양한 방송을 많이 청취해주셨으면 좋겠고요. 방송이니까 어렵지 않을까? 내가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지금 바로 참여하세요. <북구FM>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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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신대희 sdhdream@gmail.com |